변호사 김이지입니다. 이 글은 제가 변호사가 된 후 겪은 인생의 좌절, 고통에서 벗어나 희망을 찾게되는 저의 간략한 인생스토리입니다.
저 변호사 김이지가,
✅ 어떻게 변호사를 하게 되었는지
✅ 어떤 이유로 의뢰인 이익 희망이라는 경영이념을 가지게 되었는지
또한
✅ 왜? 나가는 재판마다 다 이기는 변호사인지
에 대한 김이지 변호사의 파란만장 인생 스토리입니다.
그럼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까지의 내 인생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희망의 확신에 가득차 있었다
김이지 변호사의 My way My story
공학, 언어학, 법학을 전공했다.
나는 세상의 많은 지식을 공부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일본 유학까지, 하고 싶은 공부를 원없이 실컷 한 뒤, 나는 사법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하였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변호사로서의 첫걸음을 서울 양재동에 있는 어느 로펌에서 시작하였다.
원하는 것을 전부 얻은 상태. 자신감이 넘쳐왔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하신 분이 대표로 계시는 곳이었고 뛰어난 선배 변호사들이 여럿 포진해 있는 매우 훌륭한 로펌이었다.
다루는 사건들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중요한 사건들이 많았던 그곳에서 바로 실무에 뛰어들었다.
낮에는 서울 각지의 재판에 출석하고 밤새워 서면을 쓴 뒤, 새벽 일찍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 제주 재판에 출석하고 의뢰인인 법인 관계자들을 만났다.
미팅 후 바로 서울로 돌아와서 쉴새없이 또다른 사건에 매달릴 정도로 일에 몰두했었다. 변호사로서 프로페셔널의 자부심은 이런 혹독한 과정을 통한 산물이었다.
이 누적된 경험으로 나는 어떠한 법률문제에 부닥쳐도 한 사람 몫을 하는 변호사가 비로소 될 수 있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나의 성공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눈부시고 희망의 확신에 가득차 있었다. 내 인생에 생동감과 활력을 주었던 회사는,
나를 어릴 적 TV에서 본 원더우먼처럼…
그렇다!
악당들을 가볍게 물리치는 정의의 수호자 원더우먼처럼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돈과 명예…그리고 자존감! 모든 것이 완벽한 상태였다.
하지만
어느 사건이 나의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해버렸다.
인생을 걸고 앞만 보고 달렸던 그 시간들이 송두리째 냄새나고 지저분한 시궁창으로 내던져진 듯한 경험.
마치 15초짜리 TV CM처럼 순식간에 끝나게 될 줄이야 그때까지는 신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이미 원더우먼의 방영 시간은 끝이 나 있었다.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 돌아온 어느 날.
뭔가 다른 분위기…마치 신부가 죽은 이에게 꽃을 주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엄숙함과 착잡함이 회사내에 감돌고 있었다.
구조조정.
법률시장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었고, 소속 로펌의 대표님은 규모를 확장시키기 위해 새로운 사업영역에 도전을 했었다.
변화하는 사회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판단이었으나 그 사업은 결국 실패하였다.
그 때 대표님의 상실감을 100% 이해할 수는 없었을 테지만, 어마어마한 금전적 손실과 스트레스로 인해 회사의 분위기는 어두워져만 갔다.
마치 영화속 사형수의 마지막 길, 그린마일을 걷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결과, 실패한 사업부문의 직원들에 대한 해고와 함께 변호사들 역시 차례로 떠나게 되었다. 로펌 대표님의 새로운 도전은 예상치도 못하게 무력감과 좌절감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아~~ 나를 지켜주고 나의 미래를 보장해 준 저 태양은 이제 사라지게 되는 건가?”
숨가쁨과 가슴조임이 심장을 쿵쿵쿵…쳐대고, 그 공포와 두려움이 온 몸으로 번져갔다.
“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앞만 보고 달려왔어.아빠의 어린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공부만 잘 했었던 그 머리 똑똑이였던그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금까지 꾹 참고 최선을 다해 왔는데…구조조정이라고?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지,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거야….”
나는 너무나 갑자기도 불확실한 앞날의 기로에 놓이게 되어버렸다. 구조조정의 회오리 바람은 나를 송두리채 삼켜버렸다. 그리고 나의 태양을 가리고 끝내 사라지게 해버렸다. 몸서리치게 차가운 바람이 몸속 세포 곳곳으로 스며드는 어느 겨울날.
생존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겁이 났지만 또 다른 도전을 해야만 했다. 다 잊고 쉬고 싶었지만 통장 잔고는 날 푹 쉬게 해주지도 않았다.
몇달을 고민한 후 나는 가족이 있는 대전의 작은 법률사무소로 이직하는 결단을 내린다.
방화범의 의뢰를 받아 들여야 하나?
~일과 인간성의 모순속에서~
대전은 서울과 달리 조용하고 느긋하고 큰 사건도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기관이나 행정청 등을 주로 대리하였던 서울 로펌 시절과 달리, 대전에서는 개인 의뢰인들, 즉 일반인들에게 일어나는 민사 분쟁, 그리고 가사 사건들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개인 사건은 쉽지 않았고 힘들었다. 개인 의뢰인들을 대하다 보면, 한 사람의 인격을 깊숙히 알게 된다.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나는 여러가지의 내면적 갈등을 필연적으로 겪게 되었다. 대부분의 의뢰인은, 자신은 옳고 억울하다고, 상대방이 부당하고 나쁘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건을 경험하면서 느낀 점은, 사건을 진행해나가다 보면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잘못한 케이스는 정말 많이 없다는 것이다.
나의 의뢰인 쪽에도 분명 약점과 잘못이 있고, 불리한 점 투성이인 경우도 많았다. 변호사는 그러한 경우에도 의뢰인의 이익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
어느 날
소속 로펌에서 수임한 화재보험금 청구사건을 담당하게 되었다. 당사자는 자신이 너무나도 억울하다면서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을 청구하였다.
물론 수임할 때는 그 사람이 보험금을 노리고 방화를 하였다는 내막까지 알 수는 없었고, 단지 의뢰인의 말을 믿고 회사는 사건을 수임하였다.
그러나 여느 때처럼 사건이 진행되면서 상대편에 의해 제출되는 증거 등을 통해 전모가 입체적으로 파악되면서 내적 갈등은 시작되었다.
▪의뢰인의 거짓말에 동조해야 하는지? 묵인해야 하는지?
▪의뢰인에게 솔직히 이 사건은 못 이긴다고 해야 하는지?
▪그러다 우리 사무실에 맡기지 않겠다고 하면?
▪그렇다면 변호사로서의 내 양심은?
▪그렇지만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변호사라며?
변호사에게 오는 사건은 근본적으로 사람 사이의 분쟁이며, 사람들의 욕심이나 부주의가 원인이 되고,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심지어는 범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날 줄다리기를 하면 어느 쪽 이겼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지만,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 명백하지도 않은 충돌하는 이해관계 속에서 허점과 잘못이 많음에도 어느 한 쪽 편을 들어야하고,
또 어떨 때는 증거만 봐도 완전히 범죄자인 의뢰인을 변호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자아가 분열되는 듯한 고뇌를 안겨주었다.
소속 회사에서 수임한 사건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호사의 일에 대하여 점점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변호사는 사회의 청소부?!
인간마음의 어두운 부분, 사회의 가장 더럽고 추악한 부분을 다루면서 무력감을 느끼자, 흔히 말하는 것처럼 변호사가 인권과 정의의 수호자라고는 결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회의 청소부’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거칠고 충돌하는 인간 마음의 파편들을 최대한 정리해서 사실관계를 간결하게 정리하고 증거를 모아 설득력 있게 정리하고 최대한 의뢰인에게 유리한 주장을 뽑아내고 하는 작업들을 기계적으로 할 때,
‘아 나는 그저 월급받고 일하는 사회의 청소부 중 한명이구나’
라고 느꼈다.
물론 이 청소를 잘하면 사회의 유지에 조금이나마 기여가 되었겠지만, 그러나 나는 인간마음의 밑바닥과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동안 고통스러웠다.
사람들은 법적 문제가 발생하면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찾기는 하지만, 대부분 변호사를 신뢰하지 않았고, 변호사 비용을 비싸다고 아까워하였고, 사건이 잘 되지 않으면 변호사를 탓하였다.
물론 내가 다루는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이 변호사인 내 앞에서 그러한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이 겪은 변호사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변호사가 도둑놈이었다고 서슴없이 말해버리는 분들이 많았다. 그걸 듣고 있는 내가 심지어 변호사임을 알면서도.
법조인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스스로 가치를 찾을 수가 없게 만들어 버렸다.
변호사는 정말, 법률을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어 일반인이 쉽게 다룰 수 없게 한 뒤에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그것으로 먹고 사는 존재들인가….?
이렇게 내가 생각했던 변호사의 상과 실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점점 괴리감이 커져갔고, 거기에 비례하여 자괴감도 깊어져만 갔다.
▪ 내가 왜 변호사가 되었나?
▪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에게 답할 수 없는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그 당시 나는 영혼없이 일하는 변호사였다.
의뢰인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인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의뢰인이 법을 잘 몰라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러 온 것인데도,
나는 의뢰인의 법률적 무지와 실수를 탓하는 마음으로 이미 사건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된 것이다.
100% 이길 사건은 내가 아니라 다른 변호사가 해도 이기고, 아니 변호사에게 위임할 필요도 없을지도 모른다.
변호사에게 오는 대부분의 사건은 ‘해봐야 안다’가 정답이다. 그러니 변호사는 증거를 찾고, 유사 사건의 판례를 찾고, 법리를 연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4-5년쯤 지날 무렵부터 나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할 동기가 아무래도 생기지 않았다.
에너지의 방전, 고갈, 이른바 번아웃증후군에 직면했던 것이다. 그냥 기계적으로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만 겨우겨우 해내고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는데도 아무도 손대지 않은 채 남아있는 감나무에 매달려 말라가는 하나의 감처럼 나는 변호사로서의 자부심조차도 느끼지 못한채 고립감과 무력감에 빠져 들어 영혼없이 겨우겨우 일하고 있었다.
나를 활기차게 하고 나의 미래에 확신을 주었던 그 희망의 태양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거기에 또 하나의 거대한 인생의 파도가….
그와 동시에 오랫동안 커리어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내가 외면하였던 것들이 한꺼번에 나를 덮쳐오고 있었다. 가정 역시 해묵은 갈등 끝에 해체될 지경에 이르러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이보다 더 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 상황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눈앞에 펼쳐졌다.
아니, 그 뿌리는 벌써 10여년전부터 자라나고 있었지만 나 자신에게만 매몰되었던 내가 눈치채지 못하였던 것뿐이었다.
너덜한 걸레조각같이 되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결국 1년 남짓 휴업을 하고 쉬게 되었다.
더 이상 그런 마음으로 일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몸과 마음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깊은 숨조차 쉴 수가 없을 정도로 몸은 스트레스로 망가져갔다.
그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래서 힘들게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당장의 현실을 팽개치고 어딜 가려고 하느냐’는 불안과 미련이라는 이름을 가진 악마의 속삭임을 겨우 이겨내고.
너덜한 걸레조각같이 된 심신을 뉴욕행 비행기 안에 구겨넣었다.
12시간의 비행.
나는 단 한번도 깨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 몇달 만에 아니 몇년 만에 맛본 맛있는 치즈케익과 같은 잠.
한국을 떠나 내가 책임져야 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있는 상태가 해방감을 주었다.
뉴욕!
허드슨강의 바람처럼, 나에게 뉴욕은 인생이 새롭게 신선하게 다시 꽃피게 될 것 같은 감각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저 멀리 자유의 여신이 보인다. 아! 그 옛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신세계로 이주한 사람들의 심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불안이었을까…희망이었을까… 아니면 둘다였을까?
나는 그렇게 새로운 장소, 새로운 환경에서 또 새로운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길에서, 쇼핑몰에서, 공원에서, 관광지에서, 파티에서, 누군가의 집에서….
간단한 인사에서 때로는 자신의 고민,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이나 상실, 소소한 기쁨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이방인을 배척하지 않고 친절하게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공유하여 주었다.
그렇게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내 인생의 문제는 일단 마음에서 내려놓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하나씩 배워갔던 것 같다.
그 백인 여성에게 “당신은 오늘 아침 참 힘든 시간을 보냈군요”
라고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지인의 권유로 자원봉사(volunteer)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외국에서 하는 자원봉사 활동은 의외로 신나는 일들이 많았다.
한번은 지역 사회를 위한 행사 홍보를 하려고 집집마다 방문을 하게 되었다.
몇몇 집에서는 마치 내가 귀한 손님이 온 것처럼 환영하고 집안에 들어오게 하고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자신들의 사생활에 불쑥 끼어든 이방인에게 이렇게까지 마음을 열고 따뜻하게 대해주다니.
나는 그런 경험들로부터 천천히 사람들 속으로 녹아들어가기 시작했다. 특히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추억이 있다.
어느날 아침,
홍보 팜플렛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출근시간 붐비는 어느 전철역에 가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행사 소개를 하고 팜플렛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한 장씩 건네 주었다. 그러다 30대로 보이는 한 백인 여성과 만났다.
팜플렛을 주려고 하자 그 여성은 손을 내저으며 거절하였다.
문득, 그 여성이 참 힘들어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신은 오늘 아침 참 힘든 시간을 보냈군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 여성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직장도 다녀야 하고 너무도 힘들고 해서 아침에 남편과 다투었다고.
나는 기운 내라고 말을 건넸다. 누구나 당신과 같은 상황이면 힘든 게 당연하다고, 그리고 당신은 참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 백인여성은 눈물을 삼키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자신도 한 장 달라면서 받은 팜플렛을 소중히 가방에 넣는 게 아닌가.
팜플렛을 건네준 내 손은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 여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 잔잔한 놀라움에 흔들리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 일을 열심히 한다는 생각에 빠져, 누군가가 팜플렛을 거절하면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나누어주는 일에 집중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나는 스치는 한사람 한사람의 표정을 보기 시작하고 있었고,
사람들을 내 일을 완수하기 위한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에 꼭 필요한 말 한마디 건넬 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을,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성과를 내고 동료들에게 팜플렛을 잘 뿌린다는 칭찬을 듣는 것보다, 한 사람의 마음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나도 모르게 실천하고 있었다.
명상, 그리고 다이나마이트가 터지는 듯한 충격!
미국에서의 자원봉사의 일은 그때까지의 내가 180도 바뀌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낯선 세상에서의 낯선 만남속에서 나는 그들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힘들어 쓰러질 것 같았던 예전의 ‘나’ 에 대한 배려였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할 수 있게 된 너무나도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나 자신이 바뀔 수 있었던 동력은, 그 무렵 시작하였던 명상이었다.
지쳐있던 나에게 명상은 포근한 밤의 휴식과 같았다. 나의 내면을 솔직히 직면하고 내 삶을 깊이 되돌아보는 시간.
나는 명상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진실을 목도함으로써 그때까지의 내 인생을 지탱해준 관념들이 다이나마이트가 터지듯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무너져버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내가 왜 회의에 빠져 더 이상 변호사 일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인지, 왜 의뢰인들에 대해, 사건들에 대해, 회의감과 좌절감 같은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인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내 안중에는 의뢰인이 없고 오로지 나의 성과와 나의 잘남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목적은 ‘의뢰인의 행복’이 아니라, ‘잘난 변호사인 나 자신’이 ‘저 의뢰인의 문제를 해결’ 해주었다는 그런 트로피의 획득이었던 것이다.
‘내가 뛰어나서’ 이 사건을 승소했고, ‘내가 잘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고, ‘내가 잘나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그랬다.
사실 나는 나쁜 변호사, 가장 최악의 변호사였던 것이다…!
사건을 쉽게 이기고 싶은데 우리 쪽에도 약점이 있으니 사건이 이기기 어렵게 된 것은 의뢰인의 탓으로 돌렸다.
의뢰인이 나를 신뢰하여 사건을 맡겨주니 고맙다는 마음은 없고, 의뢰인이 변호사를 신뢰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나 했다.
그렇게 나 자신이 하는 일에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전부가 자업자득이었다.
그렇게 나 자신의 적나라한 민낯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면서, 나는 가만히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깨달은 소중한 가르침을 되새겨보았다.
그 여성이 필요로 했던 것은, 홍보를 잘하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에게 유용할지도 모를 팜플렛을 받는 것보다는 그저 따스한 한마디의 공감과 배려였듯이,
나의 의뢰인 또한 법적인 승리는 물론이겠지만 그전에 그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수용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지극히 흔한 말이지만 수년간 고통속에서 황폐해진 내 마음에 새롭게 다가온 “배려”, “공감”, “수용” 이라는 단어는 내 인생의 나침반을 돌려놓았다.
그렇다. 나는 다른 무엇인 아닌, 법으로써 의뢰인을 보호하는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의뢰인을 가장 잘 보호하기 위해서는 의뢰인의 마음에 진실로 공감하고 낮은 마음에서 수용하면서,
동시에 냉철하고 정확한 판단과 논리적 근거로 그들이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서포트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쉬었던1년 남짓의 시간은, 자라오면서 비틀렸던 내 마음이 이렇게 바로잡아지는 시간이었다.
지식을 최고로 여기고 능력을 사람 가치 평가의 기준으로 삼고 오로지 성과만을 추구했던 내 마음이,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이든 탓하지 않고 너그러울 수 있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품성을 되찾는 시간이었다.
나가는 재판마다 다 이기는 변호사
변호사를 계속해야 할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던 무렵,
가장 존경하는 분에게 여쭈었다.
“제가 변호사를 계속해야 할까요?” 그러자 이렇게 답을 받았다.
“당연히 계속해야지. 나가는 재판마다 다 이기는 변호사가 되어야지.”
나는 그 말씀에, 어떻게 모든 사건을 다 이길 수가 있는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해도 질 수 밖에 없는 사건도 있는데, 라고 생각하고 그저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변화를 겪은 후, 나는 깨달았다. ‘재판을 다 이긴다는 그 말이, (원고의 청구가 다 받아들여지거나 피고의 항변이 다 받아들여짐으로써) 승소한다는 그 말이 아니구나!’
나가는 재판마다 다 이기는 변호사.
그것은 이 어두운 세상에 나의 진심이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라는 의미임을, 그래서 내가 함께 하는 사건마다 의뢰인들이 그 자신의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게 도우라는 말씀임을 한순간 벼락같이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그렇게 스스로 소명을 받아들었고, 돌아와서 드디어 나의 이름을 걸고 단독으로 법률사무소를 개업하게 되었다.
단독으로 개업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던 내가 새로운 각오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이유는, 긴 여정 끝에 얻게 된 나의 각오와 신념을 이 세상에 표현해서 많은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비록 변호사라는 전문성은 가지고 있었지만 자금도 부족했고 경영이라는 또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객은 어떻게 모아야 하나? 어떻게 고객에게 어프로치를 해서 나의 경험과 고통 속에서 알게 된 이 신념을 알려야 하나…?
개업이라는 도전은 나를 다시 불안속으로 몰아갔다. ‘산 넘어 산’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그러나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인생을 잠시 돌아보고 이제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나는 그때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경영이념을 내걸었다.
그것은 바로,
의뢰인 ・ 이익 ・ 희망
미국 뉴욕의 전철역에서, 그리고 나 자신을 솔직히 직면하고 인정하는 경험에서 내가 ‘희망’ 을 다시 발견했던 것처럼, 변호사가 의뢰인을 위해 할 수 있는 궁극적인 도움은 희망을 갖게 돕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의뢰인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서포트를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확한 요구를 이해하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거나 혹은 더 나은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 가 아니라 ‘의뢰인의 이익과 희망’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의뢰인・이익・희망’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정할 수 있었고, 이것이 법률사무소 이지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최대 중요 과제가 되었다.
나는 이제 나의 잘남을 위하여 변호사 일을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잘먹고 잘살기 위해 변호사 일을 하지 않는다.
나는 삶의 도중에 나타난, 칠흑같은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오는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법으로써 구하겠다. 그렇게 나의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변호사님이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온 것 같다”
최근 맡은 형사사건의 피고인의 아내가 이렇게 말하였다.
“남편이 변호사님이 쓰신 항소이유서를 읽고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변호사님이 자기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온 것 같다고. 지금까지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았는데, 변호사님은 그 사람이 억울해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이해해주셨어요. 그 사람은 변호사님을 통해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자체로 그냥 다 된 거에요”
사실, 나는 피고인의 형량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과, 감형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지게 되더라도 피고인의 억울함을 위해 다투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피고인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하였다. 그리고 결국 답을 찾게 되었다.
“저는 형을 줄이려고 다투어 달라는 게 아니에요. 이대로 재판이 끝나면 그 사람은 출소를 하고 나서도 그 피해자에 대한 집착과 억울한 마음 때문에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할 거에요. 그래서 그 사람이 미련을 놓으라고 끝까지 가보려고 하는 거에요. 그걸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피고인의 아내가 나에게 한 말이다. 나는 그 피고인이 다시는 이런 일로 나에게 오지 않도록,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사건을 대했다.
내가 변호사로서 일을 하는 목적이 바로 의뢰인이 스스로의 삶을 바꾸는데에 기여하는 것이기에, 의뢰인이 다시는 같은 일로 나에게 오지 않도록….
이 사례처럼, 나의 일은 단순한 변호가 아니라 의뢰인을 보호하는 보호자가 되어 최선의 서포트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뢰인・이익・희망은 내 삶의 좌절과 성공을 통해 알게 된 깨달음 중 하나이다. 최상의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법률사무소 이지는 희망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될 것이다.
단순히 권위를 가진 변호사, 전문성만을 내세우는 변호사가 아니라, 나의 가족이 법적인 문제에 휘말렸다고 여기고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종합적인 분석과 판례 연구, 의뢰인의 내적 갈등과 욕구의 이해를 통해 의뢰인에게 이익과 희망을 전달할 것이다.
이 같은 치열한 법적 뒷받침을 통해 의뢰인에게 그 삶이 더욱 좋아질 수 있다는 이익과 희망과 승리의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법률사무소 이지가 존재하는 목적이다.
“내 변호사보다 상대방 변호사가 더 좋더라 하면서
변호사님을 추천해 주었어요!”
개업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예전에 맡았던 사건의 의뢰인으로부터 나를 소개받았다는 말씀인 줄 알았으나, 상담 약속을 하고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제가 아는 분이 예전에 소송을 했는데, 자기쪽 변호사보다 상대방 변호사가 정말 인상깊었다, 잘 하더라 하면서 변호사님을 추천해 주었어요”
그 말을 듣고 놀랍기도 하고, 전혀 의식하지 않는 중에 의뢰인들은 모든 것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하고, 반가워서 친절하게 잘 상담을 해드렸더니, 완전히 안심을 하시고 돌아가셨다.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 최선을 다해 우리쪽 의뢰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변호하는 모습이 상대방 당사자의 마음에까지 가 닿았던 것이 아닐까.
나는 의뢰인을 보호하는 보호자!
나는 의뢰인의 법적인 보호자로서, 이하의 신념을 감히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다.
- 그 어떠한 사람도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정당한 법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 법적 지식의 약자들은 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며 빠르고 정확한 행동을 하는 것을 꺼려한다. 대전 법률사무소 이지는 그러한 사람에게 빠른 행동(변호사 상담)만이 의뢰인의 손해를 줄여 준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 법률 상담을 통해 예상 외의 손해를 보는 의뢰인이 없도록 서포트하고자 한다.
- 대전 법률사무소 이지의 모든 구성원들과 변호사의 관계는 서로 동등하고, 우리는 서로 최선을 다해 사건 처리에 임하는 것이 최고의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믿고 행동한다.
나는 그런 변호사는 되지 않겠다.
나는 진실된 마음으로 ’의뢰인 ・이익・ 희망’을 실천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은 변호사와는 다름을 선언한다.
1. 저는 TV 출연 등 유명세로 사건을 많이 수임한 뒤 신참 변호사들을 고용하여 맡기고 자신은 거의 신경쓰지 않는 그런 변호사와는 다릅니다.
매스컴에 자주 나온다고 꼭 실력이나 사건에 대한 정성이 그에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건에 집중할 시간을 빼앗겨, 수임한 뒤에는 신경쓰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저는 모든 사건을 최초 상담시부터 끝까지 진행 전과정을 직접 살피고 의뢰인과 소통합니다. 믿고 의뢰한 그 신뢰에 결코 어긋나지 않습니다.
2. 저는 의뢰인이 법을 잘 모르는 것을 틈타, 잘 알지 못하면서도 아무런 연구도 없이 틀린 의견을 버젓이 내놓고 전문가로 행세하는 그런 변호사와는 다릅니다!
변호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그 중에는 충분한 트레이닝과 연구의 부족으로 정확한 법적 의견을 주지 못하는 변호사도 적지 않습니다
단순한 견해차가 아니라 명백히 틀린 의견임에도, 의뢰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변호사를 믿고 그 손해는 결국 의뢰인에게 돌아갑니다.
저는 법률전문가로서 탄탄한 기본기와 많은 경험으로 무장하였으며, 철저한 연구로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고 가장 정확한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저의 경력과 승소사례 등이 명백한 그 증거입니다.
3. 저는 사건을 수임할 목적으로 승소를 장담한 뒤 수임한 뒤에는 사건을 성의있게 살피지도 않고 무책임한 그런 변호사와는 다릅니다!
사건에 따라 변호사들은 승소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조금씩 달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승소가능성이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검토 없이 승소를 장담하여, 이를 신뢰한 의뢰인이 사건을 맡기게 한 뒤 책임있는 진행은 회피함으로써, 결국 수임료에만 관심이 있는 변호사는 위험합니다.
변호사 본인이 아니라 사무장이나 직원이 상담하는 사무소도 승소를 장담하는 경우가 많아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수임하기 전 상담에서 객관적으로 사건의 가능성을 솔직하게 조언하고, 의뢰인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소송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며, 한번 맡은 사건은 전문가로서의 양심에 어긋남 없이 최선을 다하여 책임집니다.
이제부터 내 인생은
다시 떠오르는 태양처럼 희망의 확신에 가득차 있다.
그동안의 인생을 돌이켜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아프고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내면의 고찰, 내면의 반성이 없이는 의뢰인의 어떤 일이라도 진실로 성심성의껏 대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에 이렇게 나의 인생을 솔직히 돌아보게 되었다.
인생의 희망과 그리고 수많은 좌절을 통해 얻게 된 귀중한 경험을 100% 이상 나의 일에 밑거름이 되게 하고 싶다.
저 하늘의 태양은 항상 그대로였지만, 그러나 이제 그 태양은 더이상 나만의 우월감, 나만의 성공, 나만의 이익과 희망을 비추고 있지 않다.
다시 떠오른 태양은 의뢰인의 이익과 희망을 비추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이것이 변호사 김이지가 살아온 전 인생을 통해 알게 된 가치이고 나의 신념이다.
이것을 지키고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법률가로서의 나의 소신이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뢰인・이익・희망
대전이혼전문변호사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 변호사 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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